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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밤 레옹 다시보기 (느와르,케미,OST)

by 무비플릭스맨 2025. 6. 17.

무더운 여름밤, 창문 너머로 네온사인이 출렁일 때 스피커에서 울리는 총성과 스팅의 굵은 목소리가 겹치면 《레옹》은 냉기와 열기를 동시에 끌어안는 색다른 체험이 된다. 우리는 왜 30년 된 느와르를 한여름 심야에 재생할까? 세 가지 키워드로 그 답을 풀어본다.

 

 

 

여름밤에 만나는 느와르적 정서

여름철에는 대낮 햇빛과 열기 탓에 화면이 밝은 로맨틱 코미디나 호러를 많이 찾지만, 정작 한밤이 되면 우리는 온종일 달궜던 열기를 빼앗아 갈 서늘한 그늘을 갈구한다. 《레옹》이야말로 한여름 밤 공기를 차갑게 식히는 블록아이스 같은 영화다. 뤽 베송은 뉴욕의 붉은 벽돌 건물, 플리커링 형광등, 먼지 자욱한 계단참, 그리고 거울처럼 빛을 튕기는 물웅덩이를 ‘냉기’라는 하나의 정서로 묶어 낸다. 클로즈업된 원형 선글라스 렌즈에 반사되는 네온사인, 칠흑같이 어두운 복도를 가르는 플래시라이트의 도려내기식 조명은 관객의 동공을 수축시켜 체온을 낮춘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화분이라는 작은 초록색 오브제를 장면마다 배치해, 냉혹함 속에 숨은 생명력을 암시한다. 레옹이 화분을 옮길 때마다 심야의 공기는 잠시 정지하고, 관객은 흙냄새와 피 냄새가 겹쳐지는 기묘한 착시를 경험한다. 촬영감독 티에리 아르보가 던지는 롱테이크는 숨 막히는 골목을 잇달아 훑으며 ‘도망칠 곳 없이 더운’ 도시의 폐소공포를 시청각적으로 각인시킨다. 이러한 시각 전략은 결과적으로 느와르라는 장르적 틀에 ‘여름밤’이라는 현실적 체험을 이식해, 관객 자신이 뉴욕의 끈적한 공기 속으로 걸어 들어가도록 만든다. 총탄이 벽돌을 뚫고 지나갈 때 튀어 오르는 회색 먼지는 불꽃놀이처럼 찬란하지만, 그 섬광이 사라진 자리엔 코 끝을 찌르는 화약 냄새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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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심야, 네온빛이 젖은 뉴욕 거리 위에 흐르는 <레옹>의 차가운 정서

 

 

 

덕분에 영화가 끝난 뒤에도 에어컨 바람 사이로 섞여 들어오는 살갗의 땀냄새와 초록 잎사귀의 풀향이 엇갈리며, 체험은 실제 밤보다도 오래 남아 관객을 붙든다.

 

 

 

레옹과 마틸다의 케미, 가족을 넘어선 연결

레옹과 마틸다의 관계를 읽어내는 가장 흔한 문장은 ‘대리 부성애’다. 그러나 영화를 다시 보면, 이 둘은 보호자와 피보호자의 도식으로만 묶이기엔 훨씬 복잡하고 역동적이다. 살기와 순수의 이중성을 지닌 레옹은 살인 기술만 남긴 채 심리적으로는 미성숙한 아이다. 반대로 열두 살 마틸다는 비극적 가정폭력과 약물 밀매 현장을 목격하며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 버렸다. 즉, 둘은 성장선상에서 서로 반쪽짜리인 셈이다. 아침 식탁 장면을 떠올려 보자. 레옹은 우유를 홀짝이며 낯을 가리고, 마틸다는 약간의 장난기와 깊은 상처를 동시에 품은 눈빛으로 ‘내가 당신을 가르쳐 주겠다’고 선언한다. 그렇게 시작된 홈트레이닝은 ‘좌 탄창, 우 호흡’ 같은 살벌한 레슨이자, 언어 습득과 감정 읽기 훈련이기도 하다. 관객은 마틸다가 복도에서 레옹의 그림자를 흉내 내는 장면에서 두 사람의 관계가 ‘가족 흉내’ 단계에서 ‘정체성 공유’ 단계로 넘어감을 체감한다. 영화 후반, 레옹이 마틸다를 구하기 위해 통풍구를 통해 밀어 올리며 “네가 삶을 느껴야 해”라고 외칠 때, 그 말은 더 이상 아버지의 훈계가 아니다. 그것은 미완성 인간이 또 다른 미완성 인간에게 건네는 생존의 포옹이다. 여름밤에 이 장면을 다시 보면, 습도를 삼키는 에어컨 소리 너머로 두 사람이 만들어 낸 체온이 실감 나게 느껴진다. 그 체온은 화면 속 뉴욕만이 아니라 화면 밖 관객의 방까지 확장되어, 땀이 식으며 남기는 끈적한 소금기처럼 오래도록 맺혀 있다.

 

 

 

OST가 더하는 한여름의 잔향

《레옹》의 음악은 대사만큼이나 크고 또렷한 내레이션이다. 에릭 세라가 설계한 메인 테마는 저역 신스와 현악 슬라이드가 겹쳐져 도시의 지하철 굉음과 불빛 번짐을 청각적으로 묘사한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 음악이 낮과 밤, 그리고 계절에 따라 피부에 닿는 질감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한여름 밤에 헤드폰으로 들으면, 저음이 마치 콘크리트 바닥 아래에서 올라오는 냉기처럼 느껴지고, 현악의 글리산도는 끈적한 더위를 헤집으며 지나가는 미풍 같다. OST의 정점을 찍는 스팅의 ‘Shape of My Heart’는 레옹이 남긴 화분을 클로즈업한 장면 위에 흐르는 순간, 단순 엔딩곡이 아니라 레퀴엠으로 기능한다. 가사의 첫 문장은 카드 플레잉으로 시작하지만, 곧 ‘그는 진짜 가치가 숫자에 있지 않음을 안다’라는 구절로 이어져 레옹의 심리와 정확히 겹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리듬에 얹힌 숨소리다. 스팅은 녹음 당시 마이크와 아주 가까이서 노래해, 발음 사이사이의 흡기음을 그대로 남겼다. 이 숨소리는 여름밤 창문 밖에서 드문드문 날아드는 자동차 급정거 소리와 겹쳐 관객을 영화 속 뉴욕 거리로 순간 이동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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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팅의 노래와 함께 여운이 머무는 방 안,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여름밤

 

 

 

또한 중간에 삽입되는 하모니카는 도시를 가르는 열대야 바람을 시각화하고, 기타의 하이코드를 눌러 찌릿한 전류처럼 번지는 고음은 폭염경보 버즈와 맞물려 기묘한 공명음을 만든다. 결국 OST는 화면을 벗어나 방 안 공기를 재편성하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뒤에도 관객의 고막과 피부를 진동시켜 ‘영화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감각을 남긴다.

여름밤에 보는 《레옹》은 더위를 식히는 얼음물인 동시에 가슴을 데우는 위스키 같다. 느와르의 냉기, 케미의 체온, OST의 잔향이 뒤섞여 밤공기를 재구성한다. 불을 끄고 다시 플레이해 보라. 새벽이 올 때까지 영화와 현실의 경계가 흐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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